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2023.09.23 / 퇴사와 도전 본문

2023.09.23 / 퇴사와 도전

JinHwan Kim 2023. 9. 23. 02:18

퇴사

DevOps로 일했던 회사에서 퇴사했다. 배울 수 있는 환경이었고, 존경할 수 있는 팀원들과 사수가 있었고, 성장할 수 있고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업무를 맡았었다. 

 

회사 생활이 한없이 좋은 추억이었다고 얘기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감해 줄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랬다. 개발적인 성장도 성장인데 생활을 배웠던 게 더 큰 것 같다. 옆 팀과 대화는 어떻게 해야 하고, 팀원들과 기술을 공유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고, 실수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고, 개발자가 아닌 직장인으로써 더 좋은 팀원이 되기 위해 어떤 노력들이 필요했는지를 배웠다.

 

출퇴근 시간의 강남역, 역삼역 가는 전철은 다시 생각해도 끔찍하다. 새치기도, 만차에 꾸역꾸역 밀고 들어오는 사람들도 참을 수 있었지만, 그런 것들보다 다들 예민하고 지쳐 찡그리고 있는 표정들이 더 힘들었던 것 같다. 다들 어떤 생각으로 서 있을까, 어떤 삶을 살고 있고 어떤 책임으로 이런 출근길을 감내하고 버티고 있을까. 다들 대단하고 존경스럽지만서도 여유롭고 느긋함을 좋아하는 나에겐 큰 스트레스였던 것 같다.

 

그럼에도 그 1년이 좋은 추억으로 남을 수 있던 건 회사 생활이 즐거워서였다. 일이 재밌었고 부족한 나를 잘 이끌어주고 응원해 줬던 팀원들의 도움 덕이 컸다. 특히 출퇴근길에 지쳐 번아웃이 왔을 때는 팀원들 생각하면서 출근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거 같다. 전철 타러 가는 길이 정말 싫었는데도 회사 가서 할 일 생각 하면서, 팀원들이랑 떠들 생각 하면서 힘을 냈던 거 같다. 격려도, 응원도 많이 받았다. 한 달 정도 걸려 번아웃을 이겨냈을 때는 스스로 좀 더 단단해졌다고 느꼈다. 이제는 비슷한 스트레스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옵션들을 많이 만들어둔 것 같다. (연극, 뮤지컬, 독서, 그림, 운동, 그땐 심지어 별로 관심 없던 장르의 영화나 드라마도 도전해 보고 생각에도 없던 글씨 쓰기 연습까지 해봤다.)

 

그런 한 명도 빠짐없이 멋진 팀원들과 성장을 원하는 사람에겐 유토피아 같던 회사를 떠나게 되었다. 시원섭섭이라는 단어가 딱 지금 내가 회사를 표현하는 방법으로 가장 정확한 것 같다. 제일 먼저 팀원들이 보고 싶고, 내가 짜둔 코드랑 구조도, 문서들이 그립다. 평소대로 팀원들이랑 떠들고 내가 짠 코드들, 고민했던 구조들이 잘 동작하고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다. 시원하면서도 아쉽고 섭섭한 그런 느낌.

 

그렇다고 또 퇴사를 후회하거나 더 남아있을까 라는 생각이 드는 건 아니다. 다음 도전에 대한 기대감이 그 아쉬움을 이겼다. 그래서 시원섭섭하지만 후회 없는 퇴사를 결심할 수 있었던 것 같다.

 

도전 

회사 생활은 입사부터 퇴사까지 도전이었다. 함께 일을 해보자고 왔던 첫 메일, 전혀 경험이 없던 DevOps 포지션 제안, 처음 들어보던 키워드들과 어려운 용어들, 게다가 문서와 회의가 영어라니. 영어에 잔뜩 겁먹었던 첫 인사 데이, 일이 안 풀려 몇 날을 고민했던 문제들, 실수했던 순간들이 스친다. 그럼에도 성장하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일 반, 공부 반으로 하루를 즐겼던 거 같다. 

 

준비가 하나도 안되어 있었던 것 같다. 지금 생각해 보면 처음 일을 제안주신 Jedi님은 어떤 모습의 나를 보고 일을 맡기셨을까 궁금하고, 또 나는 무슨 깡으로 그 제안을 응했는지 신기하다. 그리고 지금은 언젠가부터 익어버린 내 일들과 그런 두려움이 괜한 걱정이었던 것을 떠올리며 재밌는 에피소드로 생각하고 있는 게 회고의 재미인 것 같다.

 

나는 약간의 무서움을 필요한가 보다. 항상 내가 크게 성장했다고 생각하는 순간들에는 '정말 내가 잘할 수 있을까?'라는 약간의 무서움과 걱정, 그리고 그걸 수습하면서나 맡겨준 사람에게 보답하려 더 열심히 팠던 것 같다. 급하게 문과에서 이과로 변경해서 수능을 준비한다고 부모님께 폭탄선언을 했을 때도, 우아한테크코스에서 손들어 발표를 자진했을 때도, 그리고 모든 게 처음이었던 이번 회사 생활에서도. 다른 때보다도 약간의 걱정 속에 용기를 내어 도전했을 때 더 많은 성장이 있었던 것 같다.

 

이번에도 또 다른 도전을 위해 퇴사했다. 이번엔 내 걸 해볼 생각이다. 내가 어디까지 알고, 어떤 크기의 시스템까지 구성할 수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다. 인프라 구성부터 애플리케이션 코드까지. 솔직히 이걸로 창업해 보겠다고 생각까진 아직 아이디어에 확신이 없고 아직은 방법도 모르겠다. 당장은 내가 어디까지 고려할 수 있고 어떤 규모의 서비스까지를 만들 수 있는지가 궁금한게 전부다. 밤을 새우고, 밥을 먹어가면서도, 샤워를 하면서도, 버스를 타서도 고민하고 싶고 그 시간이 가장 즐거운 프로젝트. 그걸 하고 싶다.

 

주변 사람들 말처럼 당장은 퇴사가 무모한 수일지도 모르겠다. 요즘 취업 시장도 안 좋고, 나이도 무시 못 할 것 같고. 미래를 위한 투자이거나 다음 이직할 회사를 붙잡아 둔 것도 아니다. 근데 꼭 해봐야겠다. 이게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는데 후회 없이 몰입해 보고, 개발이 질릴 때까지 밤을 새우며 즐겨보고 싶다는 생각이다. 

 

그리고 그 결과의 성장 가능성을 보든, 당장의 한계를 확인하고 또 다른 성장을 준비하든. 

열정인지, 야망인지, 무모함인지, 호기심인지 나도 뭔지 모르겠는 이 욕구를 다시 오지 않을 20대에 시원하게 쏟아내보고 싶어서.

 

+ 꾸뻬씨 따라하기

배움 1 _ 맡은 일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팀원에게 자주, 명확하게 공유하자.

어떤 방향으로 일을 처리하고 있는지, 어디서 막혔는지, 막혔다면 혼자 할 수 있는지, 그렇지 않은지.

 

배움 2 _ 시야가 넓은 개발자가 되어보자.

내가 맡은 일만 아는게 아니라, 옆 사람은 뭐하는지, 팀에서 어떤 작업들이 진행되고 있는지, 옆 팀과는 어떤 관계로 작업이 진행되는지.

 

배움 3 _ 문서화를 게을리하지 말자.

구조를 고민하고 코드를 짜는 시간과 중요도만큼 문서화를 중요시 할 것. 그리고 잘 할 것.

 

배움 4 _ 기술 도입은 신중하고 보수적으로.

사용하면 좋은 점만큼이나 (아니면 그보다 더) 사용해서 생길 부작용을 고민하고 찾아볼 것. 누구보다 잘 알 수 있도록 공부하고, 부작용을 명확하게 전달할 것.

 

배움 5 _ 절대 혼자하려 하지 말자.

저 사람에게 내가 번거롭지 않을까, 못한다는 이미지가 생기지 않을까라는 걱정에 끙끙 앓지 말 것. 함께 해결하면서 지식이 공유되고, 처리한 일의 결과가 전달될 수 있도록.

 

배움 6 _ 일 밖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한 가지는 반드시 갖자.

나는 운동, 개인 프로젝트, 새로운 공부, 영화, 전시회, 장기, 책, 그림 감상, 밤 산책, 연극과 뮤지컬, 여행으로 스트레스가 풀리더라.

 

 

퇴사하자마자 뛰어간 2주간 대만 여행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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